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승 오즈 (문단 편집) === 높은 [[이제동]] 의존도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Hwaseung OZ_SC1.jpg|width=100%]]}}} || 독보적 에이스 [[이제동]]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관계로 '''"이제동 [[원맨쇼#s-3|원맨팀]]"''' 혹은 '''"[[소년가장(은어)|청년가장]] 이제동"'''이라는 팀 이미지가 강하다. 사실 이제동을 받쳐주는 카드 또한 강한 팀이다. 창단 직후에는 당시 프로리그에서 날아다니던 [[오영종]]과 함께 투탑 체제였으며[* 창단 직후부터 팀의 최전성기인 2007 전/후기 시즌까지는 오히려 [[오영종]]이 팀의 최고 에이스였다. 당시 르까프 오즈를 상징하는 말로 오영종-이제동의 원투펀치가 있었는데 여기서 우선시되던 게 오영종이었다.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럴 수 밖에 없었는데, 르까프가 Plus 팀을 스폰싱하게 된 계기부터 오영종의 스타리그 우승이며, 당시의 이제동은 신인 시절로 2006 프로리그 다승왕을 차지하긴 했으나 개인리그에서는 아직 빛을 보기 전이었다. 이후 이제동이 스타리그 로열로더가 되던 시점에는 팀 자체가 프로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.], 오영종의 군입대 이후에는 [[박지수(프로게이머)|박지수]][* 한때 이제동-박지수-오영종 셋을 뭉쳐 쓰리펀치라고 부르기도 했다. 다만 제대로 가동된 기간이 매우 짧았다. 박지수의 짧은 전성기와 오영종-조정웅 간의 불화 때문에 결국 이제동만 팀에서 살아남는 악재로 돌아왔다.], 박지수의 이적 이후에는 [[구성훈]]이 이제동의 백업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었다. 하지만 에이스와 그 백업카드를 제외하고는 딱히 붙박이 주전이라고 부를 선수가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. 특히 오영종, [[손찬웅]] 등의 프로토스 라인이 줄줄이 군입대나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됨으로서 상당히 약해졌다. [[잉여라인|막장 종족 라인]]을 일컬을 때 등장하는 티원저그, 웅진테란 등과 비견되는 화승토스라는 고유명사까지 있을 정도.[* 그나마 잉여라인의 대명사인 [[SK텔레콤 T1|T1]]은 [[박재혁(1987)|박재혁]]이 준수한 성적을 내준데다 후기에는 [[이승석]], [[어윤수]] 등의 유망주를 발굴하며 [[저그]] 엔트리를 많이 올렸다. 오히려 저그 라인이 그렇게 부실한건 아닌데 테란과 토스가 워낙 강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이는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. --T1저그는 애시당초 반쯤 밈이다-- [[웅진 스타즈|웅진]]도 [[MBC GAME HERO|MBC]]의 에이스인 [[이재호(프로게이머)|이재호]]를 영입하면서 웅테의 악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. 화승은 [[손찬웅]]의 디스크 이후로 팀 해체의 순간까지 주전급 프로토스를 '''단 한 명도 양성해내지 못했다.''' 그나마 [[신한은행 프로리그 10-11|10-11 시즌]]에는 전역한 오영종이 활약하고 [[김유진(프로게이머)|김유진]], [[하늘(1994)|하늘]], 그리고 [[eSTRO]]에서 데려온 [[백동준]]을 적극 기용해보고자 했지만, 성과를 보기도 전에 팀이 해체되며 의미가 사라졌다.] 이처럼 당시 화승의 빈약한 엔트리[* 엔트리에 자주 보이는 선수들이 여전히 [[이제동]], [[구성훈]](or [[손주흥]]), [[박준오]], [[임원기]](or [[김태균(프로게이머)|김태균]]) 뿐이었다.]는 상대팀에서 이제동을 저격하기에 매우 쉬웠고,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날라다니던 이제동이 패할 경우에는 팀 전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.[* 대표적으로 [[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-09]] 결승전 對 CJ전. 선봉이였던 이제동이 올킬을 1경기 남겨두고 [[조병세(프로게이머)|조병세]]한테 패하자 바로 역올킬 당해 준우승했다.] 화승 오즈에서 이제동의 비중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기록으로, 이제동은 '''[[스타크래프트: 브루드 워]] [[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|프로리그]] 통산 다승 순위에서 역대 [[1위]]'''를 차지하였고, 무려 241승 108패 승률 69.1%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성적을 달성하였다.[* 그것도 다승 1위이자 동시에 [[저그]] 종족으론 유일하게 개인전 다승 TOP 10 안에 들었다. 심지어 이제동은 [[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]]부터 병행리그 전 마지막 순수한 스타1 프로리그였던 [[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]]까지 '''모든 시즌에서 저그 다승 1위를 기록하였다.'''] 덧붙여 프로리그 통산 최다 선봉승, [[에이스 결정전]] 역대 최다승, 위너스 리그 역대 최다 [[올킬]] 등을 기록하였고, 팀에 입단 후 [[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]] 신인상을 시작으로 [[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|2006 후기리그]]에는 프로리그 역사상 유일한 저그 단독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, [[신한은행 프로리그 08-09]] 역시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였다. 이렇게 리그를 제패하는 수준의 선수가 되었으니 자연히 화승 오즈 내에서 커리어를 따라올 선수는 아예 없었다. 화승 소속 선수 중 이제동 다음으로 프로리그 다승 순위가 높았던 선수가 14위 [[구성훈]]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. 물론 이제동은 전적으로 보나 승률로 보나 말 그대로 날라다녔던 수준이였지만, 같은 택뱅리쌍의 멤버들을 포함한 타 팀 에이스들과의 전적에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은근 손해를 많이 보았다. 특히 상성 종족인 [[택뱅]] 상대로 이런 면이 두드러지는데, 이제동이 이 2명에게 상성 종족임에도 상대전적이 밀리는 (총 전적은 송병구 상대로 9:10, 김택용 상대로 5:9) 가장 큰 원인이 프로리그였다. 프로리그에서는 송병구 상대로 1:5, 김택용 상대로 2:8이니 그냥 압살당한 수준이다. 테란 쪽도 택뱅리쌍급은 안 되었지만 저그전만큼은 역대급이였던 이재호 상대로 프로리그에서는 3:6으로 밀렸다. 게다가 경기 내용도 0오버6햇 관광[* 이제동 프로게이머 인생에서 가장 많이 두들겨 맞은 경기로 유명하다.]이나 저그전 코리어 관광 등 매우 굴욕적인 게 많았으며, 완성형 프로토스맵 수준이였던 [[중원(스타크래프트)|중원]]이 에결 맵으로 잡히자 팀 내 프로토스 주전들 대신[* 화승의 프로토스 라인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유명하다.] 출전해 송병구에게 전진4겟 질럿 러시로 떡실신 당하는 등 분명히 불리했던 점이 존재한다. 반면에 개인리그는 역으로 송병구 상대로 8:5, 김택용 상대로 3:0, 이재호 상대로 7:4로 전부 우위를 점했다. 거기다가 이 개인리그 전적의 실리를 감안하면 더욱더 두드러 지는게 송병구, 이재호는 토너먼트 다전제에서 여러번 만나 (2명 다 3번씩 만남) 전부 이제동이 이겼으며 김택용 또한 MSL 32강에서 2대회 연속으로 만나 첫번째 대회는 1경기, 두번째 대회는 1경기와 최종전에서 이기고 올라가 2연속 결승을 달성했기 때문이다. 이렇게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타 팀 에이스들 상대로 전적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은 이러한 요소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.[* 다만 이제동의 [[리쌍록|일생일대의 라이벌]]이자 역시 팀 내에서 원맨쇼로 유명했던 [[이영호]]와는 개인리그, 프로리그 상관 없이 호각이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.] 이 같은 미친듯한 활약 때문에 화승에서 이제동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고, 실제로 그만큼 상당히 많은 경기를 출전하였다.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혹사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, 2009년 [[FA 제도(e스포츠)|FA]] 선언이라는 우려했던 상황이 코앞까지 닥치기도 했다.[* 당시 협상권을 가지고 있던 이제동의 부모님께서 더 이상 아들 혼자서 고생하는 걸 볼 수가 없다는 몹시도 납득 가능한 이유로 계약을 철회한 것이다. FA 선언 후 실제로 [[SKT T1/스타크래프트|SK텔레콤 T1]]과 [[웅진 스타즈]]에서 오퍼가 왔지만, 정작 이제동은 화승이 성장 기회를 주며 처음부터 함께 걸어온 팀이기 때문에 당시에 타 팀으로 가기 싫었다고 한다. 그 결과 8월 31일, 극적으로 화승 오즈와 재계약을 맺었다.] 여하튼 결국 이제동은 팀이 해체하는 순간까지 화승에 남았고, 현역 시절 선수 본인의 전성기[* 이제동은 앞서 말한 프로리그에서의 활약 뿐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[[양대리그]]([[온게임넷 스타리그|스타리그]], [[MSL]])에서도 '''5회 우승, 4회 준우승'''을 달성하며 역대 [[저그]] 1위 커리어를 찍었다. 다시 말해, 선수 본인의 최고 전성기 또한 화승 시절에서 보냈단 말이다.]와 팀의 찬란했던 황금기까지 함께 보낸 화승 오즈의 상징 그 자체였다. 여담으로 당시 화승의 규모상 [[이영호|타 대기업 팀의 에이스]]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었으나, 이제동 본인은 은퇴 이후 개인 방송에서 회고하길 현역 시절 화승에 있어서 만족했고 팀이 잘 챙겨줬다고 한다. 특히나 구단 입장에서도 비교적 연봉을 못 챙겨주고 팀에서 고생하는걸 아는지, 개인리그 상금을 100% 수령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말했다.[* 단적으로 이제동의 라이벌이자 최강의 게이머였던 [[이영호]]조차도 개인리그 상금을 [[kt 롤스터|팀]]과 분할해서 가져갈 만큼 당시 소속 팀과 상금을 갈라서 가져가는게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.] 여담으로 사실상의 후신팀인 [[진에어 그린윙스/스타크래프트|진에어 그린윙스]]는 주력 선수단이 충분했는데도[* [[조성주(프로게이머)|조성주]], [[김유진(프로게이머)|김유진]], [[이병렬]], [[김도욱]], [[하재상]]→[[조성호(프로게이머)|조성호]], [[방태수]]→[[강동현]]→[[고석현]], [[양희수]]→[[장현우(프로게이머)|장현우]] 등.] 에이스 의존도가 높았다. [[스타크래프트 2: 군단의 심장|군단의 심장]] 시절에는 김유진이 다승왕을 차지했고, [[스타크래프트 2: 공허의 유산|공허의 유산]] 첫 시즌(이자 프로리그 마지막 시즌)에는 조성주가 거의 에이스 결정전 전담이었다.[* 군심 시절은 조성주'''만''' 상위 리그에 올라가서 '최후의 인류' 소리를 듣는 테란의 암흑기였고, 공유 시절에는 김유진이 이상하게도 양대 백수(...)가 될만큼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었다. --근데 프로리그 우승했다(...).--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